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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위기와 건강불평등, 그리고 기후정의운동 (27호)

    등록일 : 2022-09-23조회수 : 391
  • 기후위기와 건강불평등, 그리고 기후정의운동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서영 팀장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라는 쌍둥이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상황에, 말그대로 살인적인 폭염과 폭우가 겹친 너무나 잔인한 여름이었다. 게다가 기상청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극단적 기후현상들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이라는 재난이 상수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취약한 이들의 건강 문제들은 재난을 계기로 더 극단으로 치달으며,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기후위기가 부정적인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더 큰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이 위기를 유발한 탄소배출의 책임은 다른 이들에게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래 소득 상위 1%의 배출량은 다른 어떤 집단들보다 빠르게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동안 세계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가난한 이들의 일인당 배출량은 1.2톤에서 1.6톤으로 약간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전세계 평균의 1/4 수준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일인당 평균배출량은 심지어 채 1톤도 되지 않는다. 국가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부유한 국가들 내부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일인당 배출량은 1990년 이래 감소했으며 반대로 부유한 집단은 증가했다. 미국, 영국, 독일등의 고소득국에서 가난한 이들의 일인당 배출량은 이미 각국이 설정한 2030년 감축목표상의 일인당 평균 배출량에 근접해 있다.[1]이러한 통계로 미루어 보건대, 건강불평등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기후위기는 한 데서 태어난 쌍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때문에, 불평등의 맥락을 삭제한 채 기후위기를 그저 기상현상의 변화나 이상징후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007년 국제기구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가장 시급한 실존적 위기에 처한 남반구의 활동가들은 ‘기후정의’를 기치에 걸고 국제사회가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원인제공에 상당히 기여한 이들은 피해를 덜 받거나 받지 않는 반면, 책임이 적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에 노출되는 불의한 현실을 고려해, 기후위기의 대안을 적확히 표현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이 ‘기후정의’다. 

     

    쌍둥이 출생의 비밀 – 신자유주의

     

     세계시민사회운동에서 기후정의의 관점이 제기된 이후, 국제사회도 조금은 변화했다. 2010년대 이후 국제 협정 및 선언에 기후정의의 관점이 반영되기 시작했고, 국제기구 대표자들의 발언도 점차 문제의식이 높아지는 듯한 인상이다. 올해 UN 사무총장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정부들과 기업들은 그저 문제를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다. 그들은 이해관계와 화석연료에 대한 그간의 투자를 근거로 이 행성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고 강도 높여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적은 초라하다. 현재 각국과 국제기구의 기후대응은 실패하고 있다. UN과 그 산하 국제기구들은 세계 각국에 기후협정을 준수하기 위한 탄소감축 계획(NDC)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산업계가 수용 가능한 범위 안으로 제한된 목표치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IPCC는 최신 보고서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이전까지 제출된 NDC가 모두 달성되더라도 21세기 이내에 지구온난화를 1.5℃ 이내로 제한할 수 없다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각국의 정치가 환경의 지속가능성보다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더 우선시하고 있는 탓이 크다. 신자유주의 정치는 금융화, 탈규제, 민영화, 세계화, 그리고 철저한 개인주의를 추구하며 오히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부터 정책방향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는 건강을 생의학적 차원의 협소한 차원에서 접근하며, 소득 ∙ 노동조건 ∙ 주거 ∙ 차별 ∙ 사회보장 등의 사회적 요인들이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은 무시한다. 이에 따르면 건강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결정요인을 고려한 통합적인 정책을 세우거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공공의료를 축소시키고 의료체계를 시장원리에 내맡기면서 건강은 상품화되고, 시민은 건강을 보장받아야 할 권리의 주체에서 건강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로 전락한다. 종합하면, 지속가능성과 건강형평성에 대한 관점이 실종된 신자유주의적 정책방향 속에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도 없고, 기후위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보건 위기와 건강불평등에 대응할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할 수도 없다. 

     

    기후와 건강의 정의를 위한 공공의료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속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나아가 기후위기의 진행을 막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공공의료의 확충과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때이다. 기후위기에 따른 건강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공중보건의 개입은 일반적으로 기후변화의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와 실태조사, 공공의료자원을 활용해 기후변화의 건강영향을 중재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포함한다.[2]나아가 보건의료영역이 병원의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역사회와의 기후 대응 역량을 강화시키고, 보건의료영역을 넘어 기후와 환경 대응을 위한 제반 정책들을 옹호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3] 이러한 주장은 보건의료 영역을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자원 수준을 넘어 탄소감축을 위한 행동에 나서는 적극적 주체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적극적인 역할 또한 공공부문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상상해보건대, 공공병원이 보건의료부문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선도적인 모델을 만들고, 정책당국에 탄소배출을 유인하는 과잉의료행위를 예방하는 등의 보건의료정책을 요구할 수 있다. 또, 공공병원이 소재한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업하여 건강문제를 중재하는 협력사업을 구축한다거나, 공공의료의 연구역량으로 지역사회 먹거리 공급체계를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데에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여 기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들의 전제조건은 잘 구축된 공공의료체계이다. 앞서 이야기한 상상대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향의 보건의료정책이 수립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기만 한다면 기후불의를 시정하는 데에 공공의료가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이 너무 이상적이거나 요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의 공공의료 기반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기후정의에 입각한 정책적 상상력을 추구하고 구현할 공공의 주체가 필요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주체가 거의 부재하다시피 하다. 한국의 공공병상 규모는 OECD국가들 중 거의 꼴등 수준이며, 건강보장 수준 또한 평균에 못 미치고, 전반적인 사회보장수준이 열악한 환경이 그 배경을 설명한다. 한국의 노동시민사회는 줄곧 이러한 열악한 공공의료의 현실을 시정할 것을 요구해 왔는데, 최근 수년간 급속 성장하고 있는 대중적 기후운동의 요구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기후운동 속에서도 보건의료를 비롯한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라는 요구사항이 핵심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 거리로 나와 한국정부에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을 촉구했던 시민들은, 올해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한번 거리로 나온다. 기후위기가 건강의 위기라고 체감하는 이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이 대열에 함께하기를 제안해 본다. 어쩌면 공공성 강화를 추구하는 강력한 사회운동으로 말미암아, 기후정의와 건강정의가 새로운 세계의 쌍둥이로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1] 루카스 챈슬(Lucas Chancel), <기후변화와 탄소 배출의 지구적 불평등 - 1990-2020 요약보고서>,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 2021. 10. (번역: 한재각)

    [2] Frumkin H, Hess J, Luber G, Malilay J, McGeehin M. Climate change: the public health response. Am J Public Health. 2008 Mar;98(3):435-45. doi: 10.2105/AJPH.2007.119362. Epub 2008 Jan 30. PMID: 18235058; PMCID: PMC2253589.

    [3] Barry S. Levy, Jonathan A. Patz, Climate Change and Public Health,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232-233

     

    ⁋ 해당 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담은 칼럼으로 서울시 및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